섹션

장재형목사 - 유한한 인생

1. 인간의 유한성

장재형목사가 전도서를 강해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인간의 유한성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헛됨'이라는 주제다. 이는 전도서가 말하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도서는 구약 성경에서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역사서 이후에 위치하는 지혜서로, 잠언과 함께 지혜 문헌으로 분류된다. 지혜서는 우리 신앙 속에서 단지 지식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으며, 삶 전반을 이끌어 나가는 근본적 통찰과 실천적 방향성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전도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생의 허무함과 유한성을 직설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인간은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지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인생의 허무(헛됨)와 그 영적 의미를 여러 차례 설명하면서, 그 토대 위에서 오히려 인간이 참된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12:8)라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영어로는 "Meaningless(의미 없다)" 정도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장재형목사는 보다 정확한 해석은 '유(有)가 결국 무(無)로 돌아가는 것'에 관한 통찰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지식, 쾌락, 재물을 쌓는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모두 무(nothingness)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전도서 전체에 일관된 메시지로 흐른다. 특히 전도서 1장에서는 인간의 지식이, 2장에서는 인간이 추구하는 육적 쾌락과 재물 등이 결국 헛되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단순히 인간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극적 주장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시간을 꼽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생애는 한정되어 있고, 그 시간 동안에 인간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소유나 업적, 인간관계 등을 이루려 하지만, 결국 그것을 두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성경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선언하여, 인간에게는 죽음이 불가항력적 종말로 작동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죽지 않는다"거나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식의 가르침은 모두 거짓이며, 우리는 누구나 시간의 끝, 즉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점은, 이러한 인생의 유한성이 결코 비관적 허무주의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사실을 알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참된 지혜와 영적 각성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소유와 쾌락이 결국 무(無)로 돌아간다는 진실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모두 영원하지 않다면, 결국 우리 안에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이 싹틀 수밖에 없다. 그 갈망은 인간의 본성이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전도서 3장 11절 말씀처럼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구절과도 직접 이어진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해설하며 "동물은 존재의 의미를 사색하지 않지만, 인간 영혼은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듯 하나님을 찾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동물 세계에서는 죽음 이후의 의미나 세계의 질서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을 찾는 원초적 갈망이 나타난다.

장재형목사가 설파하는 바에 따르면, 이러한 영원을 향한 갈망은 곧 하나님께서 인간 영혼 속에 부여해 두신 흔적이자 능력이다. 우리는 우주를 연구할 때, 자연의 정교한 조화를 목도할 때, 더 나아가 인간 사회와 역사를 성찰할 때, 인간이 자기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 존재(창조주)가 있음을 깨닫는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조차 우주의 방대함과 정교함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느끼는 이 두려움과 떨림은 곧 '신앙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종교학자들은 말한다. 로마서 1장 20절에서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말하면서, 자연과 우주를 통해 설계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우리에게 길을 열어 둔다. 장재형목사가 말하길, 이를 어린 시절부터 잘 교육받고 인식해 놓아야 올바른 신앙관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인간이 육체뿐 아니라 영적 존재라는 점이다. 전도서는 '헛됨'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가 쉽게 집착하는 영역(재물, 쾌락, 명예 등)에 집착하지 말라는 경고와 더불어, 우리가 결국 죽음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인생을 살려면 '죽음을 알아야' 하고, 죽음을 직면해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역설한다. 죽음이 곧 모든 소유와 누림의 끝이니, '그 다음'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여기서부터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전도서에서 말하는 '허무'를 맥락적 언어로 볼 때, 사실상 "너희는 죽는다"라고 계속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헛되다, 헛되다'라는 표현 대신 "인간은 죽는다, 죽는다, 또 죽는다"라는 내용으로 치환해 보면, 전도서의 말씀이 얼마나 직접적이고 가슴 아픈지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도자가 일부러 "허무"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그 말을 통해 "인간이 시간 속에서 살지만 결국 그 시간의 끝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고상한 표현을 담으려는 의도가 있다. 그것이 곧 인간이 가진 한계이며, 전도서는 그 사실을 정확히, 그리고 냉정하게 짚어낸다.

결국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인생의 종말은 죽음이라는 'D-day'가 분명 존재한다. 그날이 언제 오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그분 앞에 서게 되어 있다. 또한 전도서 3장 1절에서처럼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으니"라는 선언은, 인간사가 무작정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정확한 타이밍과 목적을 세워 두셨고, 전도서는 그분의 섭리 안에서 인간이 유한성을 직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렇듯 장재형목사는 전도서의 핵심 메시지인 '인생의 허무(無)'와 '죽음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러한 통찰이 결코 절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허무를 알아야 영원한 것을 사모하게 되고, 죽음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도서 3장 11절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라는 구절은, 인간이 단지 허무 속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장재형목사는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에게 규범(norm)을 세우고 살아가야 하므로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생명과 우주의 목적이 사라지고, 모든 도덕과 의미를 인간이 임의로 정해야만 하는 막막함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심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있다"는 사실과 맞닥뜨린다. 인간이 컵을 만들 때도 그 목적이 있듯, 우리의 존재에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진리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여자를 창조하신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에 담긴 의도와 사랑을 보여 주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를 언급한다. 이 '선택' 교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부르심의 증거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으셨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여전히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인용하며, 크리스천은 먼저 진리를 알고, 세상의 욕망을 극복함으로써 다른 이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소유 극복'의 방법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진짜 소유'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3장 6절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금과 은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말했듯, 실제 재물보다 훨씬 더 귀하고 영원한 가치를 우리에게 이미 주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주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영적 풍성함, 즉 구원과 영생이다. 둘째,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일시적이지만, 믿음 안에서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고,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이라는 개념 속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매 순간이 천국을 향한 과정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은 교회 공동체와 전도 사역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장재형목사는 "대사명(Great Commission)"이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의 시작과 끝이라 보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교회의 본질적 임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교회가 세계선교를 향해 나아가고, 각 대륙별로 본부나 센터를 마련해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들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사명이 된다. 미국 각 주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전도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더 작은 나라까지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분명한 부탁이라는 것이다.

특히 2013년까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는 우리교회의 역사를 예로 들며, 사람들은 "언제 우리의 것이 생길까?" "이렇게 떠돌다 죽는 것인가?"라고 질문했지만, 결국 그 시절에는 하박국 3장 17~18절의 말씀을 붙들고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해 기뻐한다"는 고백을 했다. 그러나 선교 사역과 지체들을 케어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 즉 본부나 센터가 필요하므로,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로 채워 주셨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그 과정을 두고 "28년째 되는 해에 정착의 때가 왔다"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셋팅해 주셨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세대에게도 이 역사를 가르치고, 조상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갈라디아서 6장 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의 짐을 짐으로써 헌신과 희생을 실천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많이 사랑받은 자가 그만큼 더 사랑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은혜'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이룬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이룬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고, '자기를 비우며' 한 사람을 더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곧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장재형목사는 설교 시기에 맞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성탄절)의 의미도 자주 언급한다.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상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는 말씀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자 복음의 요약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순간적 열정이 아니었고, 끝까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점에서 우리는 감사와 감격을 표해야 한다.

이렇듯 장재형목사는 전도서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과 허무에 관해 가감 없이 설파하되, 그것이 절망과 우울의 메시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에 대한 갈망과 소명의식, 그리고 교회를 통한 대사명의 실천으로 이어지게끔 강조한다. 허무와 죽음에 대한 자각은 오히려 영원과 소명을 붙들게 만드는 통로이며, 그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기에 인간은 제한된 시간과 소유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러나 동시에 더 책임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장재형목사가 한결같이 말해 온 '소유 극복'과 '영원 사모'의 결합점이며,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기능해야 할 이유이자 힘이다.

2.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장재형목사는 전도서를 비롯한 지혜문헌(특히 잠언과 전도서)에서 얻는 통찰을 '실천적 신앙'의 지혜로 구체화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열쇠로 제시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 1:7)이라는 잠언서의 메시지와, 전도서의 중심 키워드인 '허무'를 어떻게 조화롭게 적용하느냐 하는 문제다. 인간이 유한성을 인식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유한성과 허무, 그리고 영원을 향한 갈망 사이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때 비로소 참된 지혜에 이른다는 것이 장재형목사의 주장이자,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로, 장재형목사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는 말씀에 집중한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창조주를 찾으려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세월과 놓쳐 버린 기회에 대해 통탄하게 마련이다. 젊었을 때가 아니면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전도서 12장 후반부에서는 '눈이 어두워지고, 이가 빠지고, 귀가 먹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노년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한다. 이를 통해 전도서는 '기왕에 살 때', '아직 힘이 있을 때', '청년기 때'부터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분을 경외하라고 강력히 독려하는 셈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오늘날의 전도와 선교 현장에 연결하면서, "가급적 7년 이내에, 30세 미만의 사람을 전도하라"고 독특하게 강조한다. 이는 순수함과 열정이 살아 있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더 빨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교회 내에서 주의 가정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나이가 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장재형목사는 노년층이 복음을 접하면 오열하며 회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예시를 들며,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아쉬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전도서의 가르침은 청년의 때부터 창조주를 기억함으로써 더 오랜 시간 신앙의 길을 걸어가며,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것이야말로 지혜이고, 전도자의 권고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장재형목사는 인간이 전도서 3장 1절 이하에서 말하는 '기한'과 '때'를 올바로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일에 '언제, 어떻게, 왜'라는 목적과 이유가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삶의 매 순간 "때를 잘 알아차리는 지혜"를 가져야 하고, 그것이 곧 성공적이고 의미 있는 삶의 비결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Time'과 'Date'의 개념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Time은 양적 시간, Date는 질적 시점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는데, 전도서가 "천하에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질적인 시점, 즉 'Date'를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은 주어진 삶의 여러 국면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시점에 순종하며 살 때 비로소 '때를 따라 아름답게' 사는 길로 인도된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또한 이러한 분별이 필요하다. 교회가 선교 사역과 훈련 체계, 예배와 양육, 세계 각지로의 파송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때와 시점을 놓치면 그 일은 지체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28년째가 되는 어느 시점에" 하나님께서 본부와 센터를 갖추게 해 주셨고, "9개의 노회가 세워졌으며, 대륙별 센터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전도서 3장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과 정확히 부합한다. 인간의 계획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교회 지도자나 리더가 먼저 "때를 아는 영적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하나님이 정하신 시점을 놓쳐버리면, 공동체 전체가 손해를 입고 기쁨이 지연된다. 장재형목사는 "12월에 할 일을 1월로 미루면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성도들이 깨어 기도하고 신앙의 공동체가 힘을 합쳐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열매(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세 번째로, 장재형목사는 "소유를 극복"하는 신앙관을 여러 가지 예화와 성경 구절을 통해 이야기한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돈과 재물에 얽매이기 쉽다. 특히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맘몬의 노예'가 되기 쉬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자신의 내면에 '더 진짜인 것'-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영적 보물-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전할 줄 알아야 한다.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라는 사도행전 3장 6절의 선포처럼, 우리에게는 세상 재물보다 더 소중한 '복음'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영원한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순간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고 초월적 관점을 갖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어떤 신학자의 설교집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을 소개하며, "인간은 매일 죽어 가느냐, 아니면 매일 살아가느냐"라는 관점에서 죽음이 가져다주는 비극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은 곧 '영생과 천국'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이 지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거룩한 확신과 담대함이 생긴다. 이런 신앙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자유가 곧 '소유'를 초월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이 원동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핵심 명령(대사명)이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예수님의 말씀의 시작과 끝"이라고 표현하며, "너희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같은 말씀을 교회가 늘 붙잡아야 할 핵심 메시지라고 역설한다. 오늘날에는 C12나라, G20 나라 등을 전도하고, 더 작은 나라로 복음을 확산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미국 50개 주가 먼저 아프리카를 전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전 세계 곳곳에 임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장재형목사는 공동체 내에서 서로 짐을 지라고 말하는 갈라디아서 6장 2절을 인용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많은 사람이 힘들고 버거운 짐을 남에게 전가하려 들지만,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서로를 돕고 보살피는 태도, 곧 짐을 함께 지는 삶에 있다. 이것은 결국 '사랑받은 만큼 사랑한다'는 복음적 원리와 맞닿아 있다. 크고 작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이를 돌보는 데 더 헌신하게 되며, 이를 통해 교회 전체가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전도서가 노년의 현실과 인간의 마지막을 생생히 그려 내는 것은 결코 인간을 우울하게 만들거나 좌절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 안에 살지만 결국 시간 바깥으로 나갈 운명을 가진 우리에게, "기억하라. 너희 창조주를 청년의 때부터 찾아라. 허무한 인생 안에 갇히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직접적인 권면으로 연결시키면서, "우리는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해 놓으신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셨으며, 우리를 영원으로 부르신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자"라고 종종 설교에서 강조한다.

이런 실천을 가능케 하는 가장 큰 동력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식이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룬 것"이라며, 교회가 건물을 얻고 여러 노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하며, 복음으로 시작된 교회는 복음으로 계속해서 서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요약된 복음의 핵심-"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을 되새기는 성탄절 기간을 앞두고, 장재형목사는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사건"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이런 은혜와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허무와 절망이 아니라, 은혜와 감사,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정리해 보면, 장재형목사는 전도서의 메시지를 두 가지 핵심 영역으로 확장해 제시한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한계를 안고 살아가며, 소유와 재물이 결국 무(無)로 돌아간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허무에 대한 깨달음은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의미 있는 가치(영원)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둘째, 이런 깨달음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구현될 때, 소유를 초월하는 자유와 공동체적 사랑(갈 6:2), 그리고 세계 선교(대사명)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기한을 분별하면서, 주어진 시간에 순종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태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늘 "유종의 미"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시간의 끝, 혹은 연말이 다가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모두 감당하고 나면 충만한 기쁨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지만, 그 죽음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사명을 다 했기에, 남은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살게 될 때, 삶 자체가 더 이상 허무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전 3:1)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과 계획이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장재형목사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점은, 전도서가 일깨워 주는 인생의 한계와 죽음이라는 엄중한 주제 위에 서야만 인간이 비로소 참된 삶의 목적을 깨닫고, 영원과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곧 교회 공동체이며, 서로가 서로의 짐을 져 주며, 영적 유산과 역사를 전수하면서 다음 세대를 키워 가는 것이다. 따라서 전도서에서 말하는 '헛됨'은 결코 '의미 없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가?"라는 질문은 "그렇기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라는 대답으로 이어지고, 그 자체가 전도자의 목적이라고 장재형목사는 늘 역설해 왔다.

이상 인간의 유한성과 허무에 대한 통찰'을 중심으로 한 전도서의 신학적 의미와, 그 깨달음 위에서 실천되는 '소유 극복, 영원 추구, 대사명 수행'-는 장재형목사가 전도서 전체를 설교하거나 강해할 때 줄곧 강조해 온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로 전도서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비관론적이고 염세적인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사모하며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는 도전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전도자의 말이 우리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여전히 힘 있게 다가오는 이유라고 장재형목사는 주장한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전도서가 말하는 '헛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그 시작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 열려 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전도서 12장 1절의 말씀은, 결국 모든 사람을 향한 강력한 초대다. 그 말씀 앞에서 인간은 세속적 욕망과 소유의 허무함을 내려놓고, 영원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강조해 온 '전도서의 신앙적 가치'이자, 그가 줄곧 펼쳐 온 메시지의 정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