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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 - 풍성한 열매

1. 성령의 시대와 새로운 결실

,장재형 목사께서는 요한복음 15장 8절의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라는 귀한 말씀을 중심으로, '열매 맺는 삶'과 '새로운 7년의 시작'이라는 중요한 신앙적 시점을 선포하셨다. 특히 이는 지난날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께서 "성령의 시대가 올 것이며, 그 성령은 너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게 할 것"이라 하신 말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대목이다. 성령은 곧 보혜사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우리 마음 가운데 떠오르게 하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분이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성령의 작용이 교회와 신자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구체적 열매를 맺게 하는지, 그리고 그 열매가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동시에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게 하는지 집중적으로 설명하셨다.

장재형 목사께서는 먼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거쳐 지금의 교회시대에 이르기까지 구속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간략히 짚으셨다. 구약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과 '그가 보내신 사자들'을 통해 역사하시던 시대였고, 이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가르치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구속의 '큰 그림'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내가 떠나면 아버지께서 보혜사 성령을 너희 가운데 보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 성령이 바로 교회를 가르치고 인도하며, 말씀이 깨달아지게 하고, 성도의 삶을 정결하게 하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새해가 시작되고, 또한 새로운 7년의 주기가 열리는 이 시점에야말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임재'를 더 깊이 간구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셨다.

장재형 목사는 요한복음 14장에 등장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는 예수님의 선언이, 사실상 15장에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5)"라고 이어지는 맥락 속에서 더욱 구체화된다고 설명하셨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우리는 생명의 힘과 진리의 능력을 전달받는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만 참된 제자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요한복음 15장 전체가 전하는 주님의 간절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 맺는 과정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다. 성령은 우리의 삶을 가르치고, 은혜를 일깨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신다. 장재형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정말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만 하고, 그럴 때 교회는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처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힘주어 설파하셨다.

덧붙여, 장재형 목사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라는 선언을 거꾸로 본다면, 주님께 참된 제자가 된 자들은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놀라운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하셨다. 이 열매 맺음은 단순히 외적인 '교회 성장'이나 '재정적 풍성함'을 넘어, 신앙인의 성품과 삶 전반에서 드러나는 거룩함과 희생, 섬김의 정신 등 다양하고 깊은 성령의 열매를 일컫는다. 한 달란트를 그대로 묻어둔 자가 책망받고,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풍성한 결실을 맺듯이, 성도의 삶은 성령 안에서 정결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살 때 점점 더 충실한 알곡으로 익어간다. 그 결과는 곧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실제로 돌보며, 나누고, 함께 울고 웃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현하는 데서 확실히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열매 맺는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장재형 목사는 "구약 이사야 5장의 들포도의 비유"와 "요한복음 15장의 참포도나무 비유"를 함께 읽어보면 좋다고 하셨다. 이사야 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좋은 땅을 일구고 거름을 주어 정성껏 포도원을 만들었는데, 기대했던 좋은 포도가 아니라 들포도가 열렸다는 탄식을 하신다. 들포도는 열매가 작고 씨만 많아 먹을 것이 없는, 쓸모없는 결과물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종자를 바꿔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야생 포도나무처럼 본래의 죄성(罪性) 때문에 결코 선하고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순"을 접붙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나타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선언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종자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종자개량'이라는 단어만 반복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우리가 연결됨으로써, 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연합의 실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믿음은 'In Christ(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수많은 성경구절에서 선언되는 핵심 진리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다시 사심, 승천하심과 함께 우리가 영적으로 연합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의 시대"에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이루시는 구원의 실제다.

또한 장재형 목사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를 인용하시며, 이 말씀 자체가 바울의 종말론적 선언임을 역설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날마다 새로워지고, 그래서 옛사람의 죄성과 과거의 묶임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곧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땅에서 죄를 끊고 자신을 정결케 하는 훈련(discipline)을 진행해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단지 선언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성령과 동행하며 거룩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롬 11:29)"는 말씀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요 15:16)"는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는 영원한 경륜이 있음을 제시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먼저 우리를 아셨고 예지하시고 예정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열매 맺게 하기 위함"에 그 선택의 목적이 있다고 한다. "너희로 과실을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성도는 막연히 정체되어 있으라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체적 결실을 낳는 사명'을 위해 선택받았다. 성령은 바로 이 사명을 이루도록 우리를 돕고 가르치는 분이시다.

새로운 7년의 시작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지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드디어 농사를 지어 풍성한 곡식을 거둔 사건을 예로 드셨다. 광야에서는 만나만 먹었고, 늘 유목하는 생활을 했기에 특별한 결실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자, 비로소 그들이 씨를 뿌리고 가꿔서 실제 곡식과 열매들을 거두는 '실질적인 풍요'를 체험한다. 그리고 그 소출을 먹으며 사는 순간,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가 그치게 된다. 이는 곧 한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한다. 이처럼 교회가 일정 기간 광야를 걷듯 훈련을 받는 시기가 있다면, 이제는 결실의 때, 풍요의 때로 부름받고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이 시기가 바로 그 결실의 때임을 믿고 준비하자고 독려하셨다.

다만 결실의 때에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검증'이라고 하셨다. 싹이 트고 이삭이 패는 과정에서 진짜 곡식인지 가라지인지가 식별되기 시작한다. 교회가 본질에서 벗어나 세속화의 길을 가거나, 신학적·윤리적 검증 없이 흥미 위주로 운영된다면, 오히려 가라지처럼 자라서 결실이 아닌 혼란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Faith & Order(신앙과 직제)"의 기본이 튼튼해야 교회도 풍성하게 자랄 수 있다. 교리와 윤리, 예배와 봉사의 기초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으면 안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질서가 잡힌 교회는 싹-이삭-충실한 결실의 과정을 견뎌내며, 종말론적 시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나라의 공동체로 우뚝 선다고 설명하셨다.

그러면서 다시 요한복음 15장에 돌아와, 예수님께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신 점을 부각하셨다. "참포도나무" 되신 그리스도와 "가지" 된 우리 사이에는 매우 친밀하고 긴밀한 연합이 존재한다. 성경은 이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포도나무와 가지라는 농경 비유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만큼 떨어질 수 없는, 생명의 전이가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관계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고 깨끗하게 하신다(요 15:2)"는 말씀은 신자 각자가 '깨끗함' 즉 거룩함을 유지해야 함을 시사한다. 가지치기의 목적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지, 괜히 가지를 잘라내어 고통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가지치기를 '성결(聖潔) 훈련'이라고 부르며,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세속적 욕망을 끊어내는 실제적 과정을 설명하셨다.

사람이 부유해지고 편안해지는 시기에는 오히려 죄와 시험의 기회가 많아진다. 세상적 향락과 유혹이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으로 들어오면서 영혼이 더러워질 위험이 커진다. 장재형 목사는 "광야 시절에는 부족함이 많으니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지만, 풍요한 시대가 오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신명기 8장에도 잘 살게 된 이후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마음 상태를 꿰뚫는 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믿음이 더욱 절실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겠다는 헌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거룩이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매일 새로워지고 죄를 끊어내는 과정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구체적으로 "오른 눈이 범죄하면 빼어버리고, 오른 손이 범죄하면 찍어버리라"는 예수님의 과격한 표현을 언급하셨다. "죄가 들어오는 통로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눈을 뽑고 손을 자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죄의 통로를 철저히 경계하라는 절대적인 경고다. 왜냐하면 시각으로 들어온 죄가 곧 행동으로 옮겨지기 쉽고, 그 행동이 또 다른 죄와 연결되며, 궁극적으로 마음과 영을 탁류로 물들여 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에 열려 있는 창구가 너무 많아진 시대이기에, 특히 인터넷과 미디어의 유혹은 수없이 쏟아진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장재형 목사는 어떤 선교단체 사례를 들며, 그곳에서 신년이 시작될 때마다 지도자들이 3일 금식을 하는데, 이 기간 동안 세속적 욕망이 끊어지는 실제적 경험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만큼 철저한 절연(絶緣), 자발적 단절의 훈련이 우리 영혼에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이렇게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훈련이 전제될 때, 드디어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힌다. 성령의 열매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온 것처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이다. 이런 내면의 열매는 우리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교회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길을 열어 두셨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날마다 새롭게 만드시는 한, 가능한 일이라고 역설하셨다.

장재형 목사는 작년에 받았던 말씀을 회상하며, 노아가 잣나무로 방주를 지을 때 그 안을 칸으로 막고, 역청을 발라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했던 과정이 중요하다고 짚으셨다. 그 과정이 마무리된 뒤에는 방주를 '채우는' 일이 남아 있다. 또한 "가나 혼인 잔치"에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을 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듯, 우리도 마음과 손과 발을 하나님께로 열심히 채우면, 주님께서 그것을 새롭게 변화시키실 것이라고 기대하자고 말씀하셨다. 교회가 세상에 대한 비전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려는 구체적 사역의 비전을 갖고 있다면, 이제 그것을 실제로 채우고 실행하기 위한 '성결'과 '말씀', '기도'가 무장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회가 여러 나라로 선교를 확장하고, 교육과 봉사, 나눔의 실천을 폭넓게 전개하는 시점일수록, 스스로를 정결하게 지키는 것이 필수라는 경고가 이어졌다. 풍요와 번영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지만, 그 안에서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많은 예를 들어, 교회가 부유해져도 본질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구조가 되고 만다고 덧붙이셨다. 물질을 벌고, 재정을 늘리고, 건축을 하고, 선교지를 개척하는 일은 분명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그 모든 일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섬기는 데 있다는 사실이 흐려지지 않도록 자기를 날마다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결국, 이러한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는 새로운 7년의 출발선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를 두 가지로 요약하셨다. 첫째,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 안에서 말씀이 삶에 녹아들도록 힘쓰라는 것이다. 둘째, "인 크라이스트(In Christ)"의 실제를 경험하기 위해,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이전의 묶임과 상처, 어두운 습관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는 거룩한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다. 이 결단이 없으면, 사람이 과거에 받은 상처나 죄책감, 혹은 예전 삶의 방식에 끌려 다니게 된다. 복음은 "주와 함께 죽음"이자 "주와 함께 사는" 것이므로, 과거가 매일 새로 되살아나 우리를 압박한다면 아직 죽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고백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라고 권면하셨다.

이제 우리는 정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라는 말씀 앞에 서 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이제 막 뻗어나가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예시하시며, 각종 선교와 교육, 해외봉사 등 무궁무진한 사역이 가능하다고 했다. 새로운 학생들을 기르며, 목회자를 세우고, 교사를 양성하고, 부지런히 경제적 능력을 키워 어려운 이들을 도울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신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고,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큰 그림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다른 한편, 장재형 목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영적·종교적 주장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이를테면 "하늘과 땅이 뒤틀려서 천지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주문을 외우면 역병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이론들은, 그 근본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복음"과는 전혀 다른 토대 위에 있다고 지적하셨다. 다소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참 진리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생명을 바쳐 이 땅에 보여주신 사랑에서 나오지 않는가? 진리의 선포와 진리 자체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된 것이 복음의 강력함이다. 그 진리는 인격이자 사건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는 선언이 바로 그 증거다. 장재형 목사는 복음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생명력을 공급하는 원천이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해답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그렇다면 결실의 비결은 무엇인가? 단순히 세상 원리를 따르는 '노력'만이 아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룰이라(요 15:7)"는 예수님의 약속에 근거한 신앙적 실천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전기 코드를 꽂아야 전기가 통하는 것에 비유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만 가지인 우리가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결국 신앙생활의 핵심은 "이 연합의 관계를 어떻게 더 깊이 누리고 사느냐"에 달렸다.

아울러 장재형 목사는 우리의 죄성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충만함"뿐임을 여러 예화로 설명하셨다. 성령이 오시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듯 죄가 떠나고 마음이 깨끗해진다. 그래서 예배와 말씀, 기도 모임, 공동체적 교제 안에서 성령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날 때, 교회와 성도는 세상적 죄와 유혹에서 멀어지고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행동강령을 따른다거나 결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초보 신자 시절에는 "이것저것을 하지 말라"는 식의 계율이 일시적으로 필요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해야 죄의 본성을 진정으로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올해가 시작되며, 많은 성도들이 "새로움"과 "소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이 시점에서 자칫 흥분과 낙관만 넘치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이켜 보는 일에 소홀할 수 있다고 지적하셨다. 새로운 시작은 기쁘지만, 동시에 "내 안에 죽지 않은 옛사람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 부분을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이 필수라는 것이다.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고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일매일 자신을 점검하지 않으면, 옛사람이 교묘하게 다시 살아나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새 것을 입는다"는 것은 "옛 것을 완전히 벗어버린다"는 것과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점에서, 교회 안에도 "옛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느라 과거를 헤집는 접근법"만 반복하는 방식을 경계하셨다. 실제로 복음적 치유란, 과거를 전부 들춰서 분석하기보다는 "이미 내가 죽었고, 내 모든 죄와 상처가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혔다"는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문제들은 계속 마주쳐야 하지만,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가 해체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때 비로소 완전한 자유와 진정한 새로움이 임한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은, 그동안 광야 같은 여정을 지낸 사람들에게 '실제 결실'을 보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해준다. 교회는 건물이나 프로그램의 확장이 아니라, 성도 개개인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포도나무이신 예수께 더욱 견고히 붙어 있음으로써 풍성한 열매가 맺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실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며, 동시에 세상에 대한 복음 전도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지금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훈련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착해 곡식을 수확하듯, 우리도 풍성한 소출을 기대해도 좋을 시기다. 다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풍요는 곧 시험의 시기이기도 하다. "네가 배불러 살찌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될 때에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2~14 참조)"라는 경고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대목에서 "풍요가 죄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풍요 속에서 교만해지고, 자기 힘을 과신하게 되고, 결국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로 늘 돌아가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이다. 마치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 말구유에 오셨듯이, 우리가 섬김의 자리에 서서 연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을 보살피고, 이를 통해 더 깊은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더 낮아지는 길로 가야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복음의 역설이다.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하듯, 장재형 목사도 "우리 역시 먼저 낮아져야 '주와 함께 높아지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세상은 효율과 경쟁의 원리를 우선시하지만, 복음은 사랑과 희생, 섬김으로 영광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그러니 교회가 부유해지고 구조가 커져도, 그 본질은 "낮아짐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이라는 점이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장재형 목사는 "성령의 시대가 열리고, 그 시대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주제를 첫 번째로 강조하시며, 요한복음 14장과 15장, 이사야 5장, 갈라디아서 2장 20절,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리고 신명기 8장의 핵심 구절들을 인용하셨다. 이는 모두 "새 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정체성과 목표로 살아야 하는가"에 답을 주기 위한 성경적 통찰들이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성령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씨앗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주제에서의 핵심 정리라고 할 수 있다.

2. 참포도나무 되신 그리스도와 풍성한 열매

장재형 목사는 요한복음 15장 8절의 말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우리 모두가 풍성한 결실의 삶을 살아가길 권면하셨다. 특히 이 설교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신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5)"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자가 어떻게 열매 맺는 존재가 되는가에 대한 구체적 해답을 제공한다.

첫째로,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가지"인 우리의 관계는 운명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낼 수 없다. 오직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만, 그분으로부터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는다. 이는 성경 전반에 흐르는 '연합'의 사상, 곧 In Christ(그리스도 안에서)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이 공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연합이 없이는 "들포도"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연합을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로 "죄와 세속성"을 지적하셨다. 죄된 본성은 늘 우리를 과거로, 세상으로, 옛 모습으로 되돌리려 한다. 세상의 온갖 유혹이 눈을 통해, 귀를 통해, 손과 발을 통해, 그리고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오른 눈이 범죄하면 빼어버리라, 오른 손이 범죄하면 잘라버리라"는 급진적 표현을 쓰신 이유라고 설명하셨다. 실제로 신앙인의 삶에서 가장 두드러진 위기는 외부에서의 큰 핍박이나 난관보다, 내부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죄와 유혹일 때가 많다. 그래서 철저한 '자기 부인'과 '회개'의 영성이 날마다 필요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결실의 길로 갈 수 있다.

둘째로,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 하신 말씀에 드러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꾸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말씀에서 희망을 발견하자고 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결코 열매 맺지 못하도록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때로는 가지치기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따라오지만, 그 목적은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다(요 15:2). 우리가 결실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필요에 따라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시는 작업을 하신다. 문제는 우리가 농부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스스로 농부가 되려 할 때 발생한다. 자꾸 내 힘으로 삶을 꾸리고, 내 계획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많은 욕심과 낭비가 생긴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진정한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농부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셋째로, "열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의 신앙이 단순히 '말'이나 '교리'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에서 열매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그 열매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언급된 성령의 9가지 열매, 혹은 마태복음 25장에서 강조되는 섬김의 열매, 요한일서가 언급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에 나타난 사랑의 열매 등이 모두 성도 안에서 다양하게 맺히는 열매들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 빚어지는 '서로 섬김'의 분위기, 각 사람의 언어와 태도에 배어나는 '온유함'과 '인내심', 혹은 실제로 가난한 이웃과 세상의 소외된 자를 돌보는 '봉사와 나눔' 등이 모두 '성령의 열매'의 일면이다.

장재형 목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 2:17)"이라는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교회의 목표는 참으로 열매 맺는 것에 있다고 재차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라는 구절이 가리키듯, 모든 영광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인간의 자랑과 세상적 인정에 집착하는 순간,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가 아니라, 독립된 들포도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인가"를 묻고, 지체들과 상의하며 말씀 안에서 분별해야 한다.

나아가 장재형 목사는 우리 시대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나, 교회는 오래된 복음의 진리를 흔들림 없이 붙들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전도와 섬김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가르침"이다. 사람의 방식, 세상의 경영 원리로는 한계가 있지만, 성령은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혜를 주신다. 예수님께서 떠나시기 전 "성령이 와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고 하셨듯이, 성령의 시대를 사는 교회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함으로써 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결실의 때가 온다는 것은, 한편으로 상당한 기쁨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큰 책임감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열매를 거둔 뒤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에 재정이 풍성해지고, 인력이 늘어나고, 건물이 커지고, 많은 사역이 펼쳐지는 상황이 올 때, 더 낮은 곳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만족과 명예만을 좇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하셨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물질적 번영을 누렸지만, 이후 교만해지고 우상숭배에 휘말려 멸망의 길로 치닫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많은 열매를 맺고 번성한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열매를 어떻게 사용하며,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리로 기쁨으로 내어드리느냐가 성도에게 있어 가장 민감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첫째로 '성결(聖潔)'을 유지해야 하고, 둘째로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하며, 셋째로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더 깊이 붙어 있음'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여기에 더해, 실제적인 삶 속에서 "이웃을 섬기고 전도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열매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또한 장재형 목사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 각자가 더욱 성숙해지고, 교회가 세상 가운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전망하셨다. 특이하게도 "우리가 한 세대를 살아왔다.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되어진 것"이라는 언급에서, 그는 지금까지 해온 사역들이 사실은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덕분이었다고 고백하셨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이 앞으로도 길을 여실 것이므로, 올해부터 갑자기 결실이 많아질 것을 기대하라고 격려하셨다. 그런 맥락에서, 광야 생활에서 가나안 생활로 넘어간 이스라엘이 '만나' 대신 땅의 소출을 먹게 된 사건이 상징하는 바를 거듭 언급하셨다. 과거엔 경험하지 못했던 '농사'의 영역, '결실'의 영역으로 본격 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포도나무를 깨끗하게 한다"는 말씀이 뜻하는 바, 곧 '가지치기'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이 신자의 삶에서도 필수라는 점을 장재형 목사는 매우 강하게 호소하셨다. 예수님을 믿어서 죄 사함을 얻었다면, 이제 더 나아가 성령과 동행하며 남아 있는 악습, 죄의 소욕, 옛 성품을 잘라내야 한다. 그 작업을 소홀히 하면, 교회가 커져도 내면이 야생 포도처럼 변질될 위험이 있다.

나아가, 장재형 목사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과거에 묶이지 말고, 날마다 새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강조하셨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정말 "죽고 다시 사는 존재"가 되었다면, 과거의 실패나 죄나 상처가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데 있다. 그래서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듯, 날마다 십자가 앞에 서서 "오늘도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런 결단이 반복되면서, 죄를 이기고, 성결을 유지하며, 성령과 동행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요한복음 15장의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이 실제로 펼쳐진다.

장재형 목사는 설교 말미에 "결실의 시대, 풍요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 자신을 낮추고 성결함을 지키는 자만이 그 풍요를 참되게 누릴 수 있다"고 경고 섞인 권면을 하셨다. 교회가 잘될 때, 이름이 알려질 때, 재정이 커질 때, 성도 수가 늘어날 때, 인간적인 허영심과 세속적 가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올 위험이 매우 크다. 하지만 진정으로 교회가 '열매 맺는 공동체'가 되려면, 늘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성도들의 영혼과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고, 그래야만 맺히는 열매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에 복된 소식이 된다.

요한복음 15장 8절은 단순히 한 해의 표어로 삼을 만한 짧은 문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성도의 '존재 의미'를 결정짓는 핵심 구절이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는 이 말은 곧 "제자는 반드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진리를 동시에 선포한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진리를 붙들고, 매일의 삶에서 성령의 가르침을 구하며, 죄를 버리고 거룩함을 추구하며, 실제적인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시대"라는 특별한 은총을 받은 시대를 살아간다. 예수님이 가시지 않으셨다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놀라운 결실의 도약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나는 교회에 오래 다녔으니 자연스레 열매를 맺겠지"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버리자고 촉구했다. 하나님은 오늘도 "들포도" 같은 열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시고, 좋은 포도를 기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그리고 교회 전체는 농부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포도나무"가 되어 주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며 가르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토록 철저한 의존과 순종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셨고, 또 앞으로도 동일하게, 아니 더욱더 놀라운 방식으로 길을 열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은혜를 돌이켜 보면,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된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영으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되어 왔음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마음껏 꿈꾸어야 한다. 동시에,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죄와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날마다 십자가로 돌아가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정결함과 겸손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자들에게 결실의 기쁨은 더욱 크게 임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이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이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시는 핵심은 크게 둘로 요약된다. 첫째, 성령의 시대가 열려 있음을 인식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을 통해 과거와 죄성을 끊어 내는 거룩함을 추구하라. 둘째, 그 거룩함을 토대로 하여 실제로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그리고 그 열매는 곧 '참된 제자의 증거'가 된다. 이것이 그의 올해 첫 설교 전반에 흐르는 주된 메시지였고, 또 앞으로 7년, 더 나아가 우리 일생 동안 붙들어야 할 영적 지침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장재형 목사의 이번 설교 정리는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