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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오직 하나의 창문

로마의 심장부에는 고대 건축의 기적이라 불리는 '판테온(Pantheon)'이 서 있습니다.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거대한 원형 건축물은 당대 로마인들이 숭배하던 수많은 신들의 조각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의 진짜 경이로움은 그 화려한 신상들에 있지 않습니다. 거대한 돔의 천장 정중앙, 유일하게 뚫려 있는 '오쿨루스(Oculus, 눈)'라 불리는 원형 창입니다. 인공 조명 하나 없는 그곳에서, 오직 그 하나의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만이 신전 전체를 비춥니다. 주변의 잡다한 신상들은 그 빛 아래서 그저 돌덩이일 뿐임을 드러냅니다.

2천 년 전,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 펜을 들었을 때, 그의 심정이 바로 이 오쿨루스를 바라보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는 헬라 철학의 궤변, 영지주의의 신비주의, 유대 율법주의, 그리고 천사 숭배 사상이 뒤엉킨 혼합종교의 전시장과도 같았습니다. 수많은 '영적 지식'들이 구원의 길이라며 소리치던 그 혼란 속에서, 바울은 단 하나의 빛,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리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사다리, 그리스도의 충만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는 그의 여러 강연과 설교를 통해 골로새서를 관통하는 대주제가 바로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충만(Pleroma)'임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를 그저 신성한 존재들 중 하나, 혹은 육체를 입지 않은 영적 환영으로 치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선포한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라는 구절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심장이 뛰는 곳이라고 역설합니다.

판테온의 오쿨루스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육체로 나타난 신비입니다. 니케아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가 수백 년에 걸쳐 치열하게 지켜낸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라는 고백은 단순한 교리적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허상이나 관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제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체적 사건 위에 서 있다는 확증입니다.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이 신학적 통찰은 오늘날,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로 통한다"거나 "예수는 단지 위대한 성인일 뿐"이라고 말하는 현대판 영지주의의 파도 앞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견고한 닻이 되어줍니다.

거룩한 교리가 식탁 위에 내려앉을 때

흥미로운 점은, 우주적 그리스도를 노래하던 바울의 시선이 갑자기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가정'으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과 4장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의 관계를 다룹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당시의 가부장적 규범인 '가정 규례(Haustafeln)'의 반복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복음의 혁명적인 '전복(Subversion)'을 읽어냅니다. 세상의 질서는 힘 있는 자가 군림하는 피라미드 구조지만, 바울이 제시하는 가정은 모든 구성원이 '주께 하듯' 서로를 섬기는 십자가의 구조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베풀라". 당시로써는 파격적이었던 이 명령들은 그리스도의 충만이 교회 담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진정한 복음의 능력은 강단 위에서의 외침보다, 저녁 식탁에서 가족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직장에서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증명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매주 듣는 설교와 성경 공부가 나의 성품을 깎아내고, 관계의 무례함을 다듬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울림일 뿐입니다. 골로새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신학은 당신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당신의 가정은 작은 천국입니까?

고립되지 않는 믿음, 기도로 연결된 연대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위대한 편지가 '혼자'의 힘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곁에는 신실한 전달자 두기고가 있었고, 도망친 노예에서 사랑받는 형제로 거듭난 오네시모가 있었으며, 골로새 교회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에바브라가 있었습니다.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이 초대교회의 네트워크야말로 복음이 로마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숨은 동력이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오늘날 개체 교회주의에 빠져 고립되어 가는 한국 교회를 향해, 골로새서 4장에 나타난 이 '거룩한 연대'를 회복할 것을 주문합니다.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가 서로의 편지를 돌려 읽으며 영적 유산을 공유했듯, 현대의 성도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는 바울의 당부는 2천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골방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수만 가지의 우상으로 가득 찬 판테온과 같습니다. 돈, 명예, 쾌락, 혹은 거짓된 지식들이 저마다 우리를 구원해주겠다고 손짓합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가 골로새서를 통해 다시금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진리는 명확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만이 우리의 삶을 비추는 참된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조용히 성경 묵상의 자리로 돌아가, 껍데기뿐인 세상의 가치들을 내려놓고 우리 삶의 오쿨루스 되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의 충만하심이 우리의 메마른 영혼과 가정, 그리고 일터를 가득 채우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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