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날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은 무엇에 기대어 설 수 있을까요. 장재형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의 로마서 8장 28~39절 설교는 그 답을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찾습니다. 바울은 고난의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약속의 뜻
로마서 8장 28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 약속의 범위는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을 넘어섭니다. 이어지는 29~3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신 이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는 구원의 흐름을 들려줍니다.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에는 구원을 마지막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겪는 일의 의미를 묻던 독자는 그 안에서 구원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설교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예정에서, 우리의 부족함까지 아시면서 사랑으로 부르시는 은혜를 읽어 냅니다. 구원의 출발을 자신의 도덕적 우수함에서 찾는 사람은 실수를 할 때마다 그 근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아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 부족함을 발견한 순간에도 그분께 돌아갈 이유가 남습니다. 예정의 가르침은 이렇게 앞날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구원의 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위로가 됩니다.
장재형 목사가 사용하는 모자이크 비유도 이 지점을 비춥니다. 서로 다른 색과 모양의 조각은 하나의 그림 안에서 연결되지만, 조각 하나를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오늘의 좌절이나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내 삶을 모두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보이는 조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평가하려던 마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 완성을 신뢰하는 쪽으로 조금씩 옮겨 갑니다.
그렇다고 아픔의 이유를 서둘러 찾아내거나 괴로운 일을 아름답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은 버겁다고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약속은 모든 의문을 먼저 풀어야 믿을 수 있다는 부담을 덜어 줍니다.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사람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오늘을 맡길 수 있도록 붙드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붙드는 십자가와 중보
그 신뢰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물은 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로마서 8:31~3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선언에는 십자가에서 이미 행하신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내 사정이 좋아졌는지 헤아리기에 앞서, 나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 누구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 대적하겠느냐는 질문은 뒤따르는 고발과 정죄, 환난의 목록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바울은 적대하는 현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고 선포합니다. 고난이 얼마나 강한지를 따지는 것과 그 고난이 구원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 둘을 구별하며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어서 로마서 8장 33~34절은 고발과 정죄의 문제를 다룹니다. 다른 사람의 비난뿐 아니라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목소리도 신자를 지치게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실패가 자신의 믿음 전체를 부정하는 증거처럼 느껴질 때, 바울은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자신이 내리는 평가보다,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근거합니다.
여기에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위로가 이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게 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 오늘의 두려움도 맡길 수 있습니다. 문제가 그대로 남은 날에도 하나님께 나아갈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랑을 믿으면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수를 숨기느라 변명하거나, 자신을 끝없이 책망하느라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미룰 필요가 줄어듭니다. 나를 의롭다 하신 분 앞에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나아가 용서를 구하고, 돌이켜야 할 일을 살필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자신의 잘못을 가볍게 다루는 태도와 다릅니다. 은혜를 신뢰하기에 그 잘못을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긴다는 말씀과 고난의 현실
고난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이 떠났다는 뜻일까요. 로마서 8장 35절에 등장하는 환난과 곤고, 박해와 기근, 적신과 위험과 칼은 바울이 그 현실을 알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36절에는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고 도살할 양처럼 여김받는 처지까지 나옵니다. 사랑받는 신자의 삶에도 생존을 위협하는 고난이 있다는 사실이 이 확신의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바울은 그 모든 일을 말한 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로마서 8:37). 고난이 끝난 다음에야 승리를 말하는 순서가 아닙니다. 고난을 겪는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넉넉히 이긴다고 선언합니다. 이 설교가 풀이하는 넉넉함은, 하나님이 끝내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약속을 신뢰하는 영적 담대함입니다.
이 대목에서 힘의 근원이 분명해집니다. 승리하게 하는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얼마나 단단히 버티는지만 확인하다 보면 지쳐 가는 자신을 보며 더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연약함을 감춘 채 강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려움을 품고 기도하는 오늘도 그 사랑 안에 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은 그 사랑을 끊을 수 없는 것들의 범위를 더욱 넓힙니다. 사망과 생명, 현재와 장래, 높음과 깊음, 어떤 권세와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신자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내일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사실과 내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다는 고백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미래의 모든 위험을 미리 해결할 수 없어도, 그 사랑을 의지하며 오늘 감당할 일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순종과 돌봄으로 이어질 때
이 확신은 신자가 어떻게 살아갈지에도 영향을 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본문을 하나님이 성도를 끝까지 붙드시고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성도의 견인과 연결합니다. 그 은혜를 확신할수록 더 깊은 헌신과 순종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미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자랄수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쏟던 힘을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생기고, 미뤄 두었던 책임을 감당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한동안 피했던 일을 정직하게 마주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시간을 내는 선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일이 곧바로 좋은 평가나 눈에 띄는 성과로 돌아오지 않아도 섬김을 이어 갈 근거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이 먼저였고, 오늘의 순종은 그 사랑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이처럼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넘어 누구의 뜻을 따라 살아갈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같은 사랑 안에 있는 공동체를 대할 때도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삶을 부족한 조각 하나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면, 다른 사람 역시 한 번 드러난 연약함만으로 재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을 서둘러 보태기 전에 그의 사정을 듣고, 함께 기도하며, 필요한 도움을 살피는 일이 서로를 세우는 시작입니다. 고난 속의 사람에게 결론을 재촉하지 않고 곁에 머무는 태도에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담깁니다.
기도를 마친 뒤에도 풀어야 할 문제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 앞에 선 사람에게는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지금도 간구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사랑에 붙들린다는 확신은 자신의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고, 이웃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을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놓지 않으신다는 믿음으로, 오늘 나는 고난 중에 있는 누구의 곁을 지킬 수 있을까요?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